A Storm of Swords (Mass Market Paperback) - 10점
조지 R. R. 마틴 지음/Bantam Books

얼음과 불의 노래 3부 A Storm of Swords - 드라마와는 다른 이야기

얼음과 불의 노래 3부부터는 아주 큰 틀만 빼고는 드라마와 사뭇 다른 모습과 다른 이야기가 나타난다. 특히, 책 후반부는 드라마와 무척 다르다. 드라마만 본 사람이라면 3부 끝에서 놀랄 것이다. 

소설에서는 드라마와 달리 램지가 크게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다. 그냥 들리는 소문만 읽을 수 있지, 직접 그 모습을 목격할 수 없었다.

하운드와 브리엔의 그 무지막지한 싸움은 소설에 아예 없다. 게다가 하운드와 아이아는 블러드 게이트에 가지도 않는다. 드라마에서 새로 만든 장면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산사가 로라스랑 결혼하기로 예정하는데, 원작소설은 그건 산사의 예상이었고 올레나가 예정한 사람은 윌라스였다. 산사와 올레나의 만찬 장면에서 소설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둘의 대화를 듣지 못하도록 광대가 엄청 큰 소리로 '곰과 처녀'라는 노래를 부른다. '반지의 제왕'만큼은 아니지만 얼불노에도 노래가 꽤 있다. 특히 3권에 많이 나온다. 섹스 장면도 3권에 가장 많이 노골적으로 나온다. 

책에서는 롭이 라니스터 가문에 협력하는 작은 가문의 딸과 단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결혼해 버린다. 황당했다. 롭이 어리고 어리석다는 점에서는 아주 엉뚱한 행동이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이야기 진행이라고 말하긴 어렵겠다. 미인계에 몰락한 꼴이다. 이 부분은 드라마가 훨씬 설득력이 있게 다시 만들었다. 소설보다 드라마가 설득력이 더 좋고 감정도 더 깊다.

소설을 읽을수록 드라마를 참 잘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드라마는 원작 소설을 잘 표현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 능가해서 더 강렬하게 캐릭터의 감정에 더 빠지도록 발전시켰다.

그 유명한, 피의 결혼식은 드라마가 훨씬 이야기를 잘 만들었다. 드라마 버전으로 이야기를 기억하는 게 더 좋겠다.

드라마에서는 없는, 대니러스와 조라의 키스 장면이 120쪽에 나온다. 캐릭터의 일관성에서 보자면 조라의 행동은 합리적이고 사실적이다. 그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기사이고 그 사랑에서 힘을 얻고 사는 이유를 찾는 남자다.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가 기존 권선징악의 틀의 거부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선인과 악인의 틀마저 없앤 것은 아니다.

지독하게 충성스럽고 선한 인물로 에다드와 다보스를 그려내는 걸 보면 그렇다. 미련할 정도로 정직하다. 융통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전형적인 충신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충언하는 신하다. 

캐릭터 자체의 성격이나 성품은 이야기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지만 사건을 겪거나 자세한 사연이 밝혀지면서 독자로 하여금 그 인물에 대한 관점을 바꾸도록 한다. 

3부에서 제이미에 대한 감정이 바뀐다. 지난 이야기에서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이었었다. 킹슬레이어가 왕을 시해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알고 보니, 아주 나쁜 놈만은 아니었다. 쓸데없이 충성스러운 기사보다야 제정신인 배신자가 더 인간적일 수도 있다. 물론 제이미는 여전히 나쁜 놈이다. 하지만 사악한 인간은 분명 아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악행의 범위에 선을 긋는 사람이다.

타이윈 라니스터는 폭군 아버지에 무자비하고 때때로 야비하기까지 나쁜 조폭 두목 같은 놈이라고 여겼는데, 그가 그런 사람이 된 사연을 들어보니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하기도 어렵더라. 자기 아버지가 너무나 선량하고 착해서 주변 가문들한테는 물론이고 하인들한테마저 조롱당하는 것을 본 타이윈은 젊은 나이에 단단히 결심하고 단호하게 무자비하고 힘이 있는 라니스터 가문의 명성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왜 애써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이미 드라마로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그 이유는 단순하다. 각 인물의 생각과 속마음을 알기 위해서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 말, 행동으로도 그 사람의 생각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확실히 알기는 어렵다. 글로 쓴 소설은 그 사람의 머릿속을 볼 수 있다. 이 점은 드라마 같은 영상 매체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소설을 못 따라간다.

이야기의 경제성에 보자면, 원작소설은 지나치게 인물이 많고 자잘한 사건이 너무 많다. 하지만 그래서 더 사실적으로 보인다. 대개 이야기는 간결하고 명확하다. 하지만 얼불노는 간단하지 않으며 사건의 정체 또한 어느 시점에 이르기 전까지는 명확하지도 않다. 

드라마는 소설과 달리 모호함과 복잡성을 배제한다. 영상매체는 눈에 보이는 사건과 겉으로 드러난 행동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인물과 사건의 수를 필요최소한으로 줄이면서 강렬한 인상을 줘야 한다. 

소설이 더 사실적이긴 한데 드라마가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소설은 장면보다는 말이 많다. 시시콜콜하게 말이 많다. 드라마는 말보다 장면이 많아서 좋다.  

소설의 캐릭터 시점 서술 방식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서사의 중단이 자주 일어난다. 그 끊어짐의 간격이 길면 길수록 그 전에 읽은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441쪽 샘웰 장을 읽고 있으면 그 전 샘웰 장 끝 부분 253쪽을 다시 읽어야 했다. 무려 188쪽의 공백을 극복해서 이야기를 파악해야 한다. 게다가 그 사이에 다른 캐릭터 시점의 서술을 머릿속에 넣은 상태에서 말이다. 

3인칭 캐릭터 관찰자 시점의 문제점은 3권에서 본격적으로 터져서 4, 5권에서는 해결 불능에 이른다. 3권 서문에 작가가 썼듯, 이 캐릭터 중심의 서술 방식은 근본적으로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하기가 곤란하다. 

3인칭 캐릭터 관찰자 시점 서술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없다.  

독자 입장에서는 시간 서술이 자꾸만 끊어지는 게 영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각 캐릭터의 장만 읽는 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영상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등장인물의 속마음과 속생각을 잘 알 수가 없다. 반면 소설에서는 잘 알 수 있다. 삼룡이 엄마는 겉으로는 강인해 보여도 속은 연약하고 걱정도 많다. 다시는 출산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삼키고 용을 자기 자식으로 여긴다. 조라에 대한 애증도 속으로는 복잡하고도 미묘하다. 

3권부터는 1권과 2권에 비해 읽기가 더욱 힘들다. 드라마와 소설의 차이가 벌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얼불노에서 가장 우울한 '피의 결혼식'이 있는데다가, 각 캐릭터별 서술이 시공간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다. 클리프행어식으로 캐릭터별 이야기를 끊어 놓았다. 작가의 고약한 심보라니. 

얼불노에서는 수많은 규칙을 깨서 놀라게 하는데, 그중에서도 세븐 킹덤의 불문율 '맞아들인 손님이나 그 손님을 받아들인 주인이나 절대로 상대를 죽이지 않는다.'를 깨버려 충격에 충격을 더했다. 세븐 킹덤 사람들도 놀라고 분노한다. 

얼불노 세계는 대체로 무신론자의 시각을 유지한다. 세상은 암울하며 정의 따위는 없으며 힘의 논리로 움직일 뿐이다. 

왕좌의 게임에서 여러 왕을 움직이는 사람은 리틀핑거다. 얼불노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이 된 사건인 존 아린의 독살은 물론이고, 세븐킹덤의 판세를 크게 바꾸게 되는 조프리의 독살도 이 작고 교활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다. 음모의 제왕이라 부를 만하다. 

크래스터가 디 아더스한테 자기 아들을 산 채로 제물로 바친다는 읽다가 문득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 생각났다.  

극도의 두려움에 빠진 상태에서는 설령 문명인일자라도 사람을 신의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할 수도 있을 법하다. 이만큼 희생을 했으니 당연히 보상이 있을 거라 생각에 빠지는 것이다.미신이다. 신을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절대적 힘으로 멋대로 믿는 것이다.

Posted by 러브굿 영어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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